권과 책의 차이는 두 글자의 발생과정을 비교해 보면 분명해집니다.
먼저 卷은 비단이나 종이 등의 서사 재료를 두루마리로 말아서 사용하던 데서 유래한 글자입니다. 이에 비해 冊이란 글자는 죽간(대나무 조각을 길쭉하게 잘라 대나무 안쪽에 글을 쓰거나 새긴 것), 목독(나무 조각)을 서사 재료로 사용하던 시절에 죽간이나 목독을 묶어놓은 형태에서 글자의 모양을 따고, 또 策의 음을 따서 만든 글자입니다.
따라서 卷이란 두루마리 한 권에 들어갈 만큼의 내용을 기준으로 세는 단위이고, 冊은 묶어서 하나로 제본해 놓은 형태를 기준으로 세는 단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서는 저작 당시 저자나 편자가 내용에 따라 권을 나눕니다. 그러면 이것을 필사하거나 인쇄하는 사람, 혹은 소장자가 적당한 분량을 묶어 책으로 제본합니다. 굳이 비교를 하면, 卷은 내용에 따라 篇을 나눈 것이어서 지금의 章이나 chapter와 같은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冊은 지금 우리가 도서의 물리적인 수량을 셀 때 한 권, 두 권 등의 단위를 사용하는 것과 사용법이 같으며, 영어의 volume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책이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면, 저자나 편자가 내용에 따라 3부분으로 나누어 놓은 것을 간행 혹은 필사를 한 사람, 혹은 소장자가 임의로 하나로 묶어 제본을 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예를 들어 논어가 20권 10책이라고 하면, 원래의 논어는 내용에 따라 20 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 각 한 편이 한 권이 되는데, 한 권의 양이 많지 않으므로 보기에 편한 정도의 분량인 두 권을 한 책으로 묶어 제본하여 사용하였다는 뜻이 됩니다.
참고로 조선조에는 종이 20장을 한 권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20장 정도면 한 권이 만들어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20장은 지금의 페이지 개념으로 보면 40페이지가 됩니다. 종이 40페이지면 한 책으로 제본하기엔 아무래도 부족한 양입니다. 그래서 여러 권을 묶어서 한 책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지요. 이러한 차이는 서사 재료의 변천 과정에서 이해하면 더욱 간단합니다. 죽간, 목독을 묶어 사용할 때는 내용이 조금만 들어가도 금방 사람이 손으로 다루기엔 벅찰 만큼의 부피가 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좀 더 진보한 형태의 서사 재료인 비단이나 종이를 사용하자 한 卷에도 많은 내용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 권의 분량이 사람이 손으로 다룰 수 있는 양의 한계에 못 미치므로 여러 권을 묶어서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란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되었겠지요.
그러므로 이 두 글자가 함께 사용된 후대에 이르러서는, 권은 종이나 비단으로 만든 두루마리 하나에 들어갈 만큼의 내용을 의미하는 단위가 되었고, 책은 물리적인 제본의 단위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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