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8년 8월 7일(음력 1388년 6월 27일)
이성계가 최영을 유배보냈습니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단행하자 최영이 개경에서 항전에 나섰지만 불가항력이었습니다.
개경을 점령한 이성계는 최영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은 내 본의가 아닙니다. 부디 잘 가십시오, 잘 가십시오."
최영은 참수되기 직전 이런 유언을 남깁니다.
"만약 내가 평샌 한 번이라도 사사로운 욕심을 품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풀이 나지 않을 것이다."
최영 장군의 묘는 조선 시대 내내 풀이 나지 않은 적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최영의 무덤은 풀이 잘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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