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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유사사학과 일제 육군 참모본부의 교시
최재석은 일본인 학자들의 수미불일치를 ‘서두의 위장법’이라 명명하였다. 강단유사사학은 그들의 스승을 좇아 항상 서두의 위장법을 사용한다. 그들은 야마토임나설을 극복하고, 『삼국사』를 신뢰하고, 동북공정에 반대한다고 항상 서두에서만 말하고, 본론과 결론은 『삼국사』를 불신하고 야마토임나설과 동북공정을 추종한다.
전술하였듯이 일본육군 참모본부는 1870년부터 역사 날조를 시작하였다. 참모본부는 야마토임나설에 관해서는 『황조병사』(1880년)와 『임나고』(1882년)를, 광개토대왕릉비문에 관하여는 1884년 「동부여영락대왕비명해」와 「고구려고비고」를 제작하였다. 일제는 야마토임나설을 날조하고, 광개토대왕릉비의 글자를 변조하거나 지워서 야마토임나설의 장해물을 제거하였다. 일제 참모본부 날조의 핵심사항은 임나를 가야로 만드는 것이었다. 임나가 가야가 되기만 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있었던 한반도에 「일본서기」를 바로 적용할 수 있다고 우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경우 장애물은 『삼국사』와 『삼국유사』인데 이에 대해선 두 사서가 날조라고 대응했다.
현재도 강단유사사학은 일제 참모본부의 구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사실, 어찌하여 『삼국유사』의 가야는 가야가 아니고, 「일본서기」의 임나가 한반도의 가야가 되는지는 강단유사사학 자신들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참모본부 교시의 영역이므로 그들은 그저 순종할 따름이다. 교시에 충성하기 위해 강단유사사학은 『삼국유사』의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기사를 근거없이 날조라 주장한다. BCE 24세기 방사천리 삼한조선과 BCE 1세기 韓 지역의 중마한을 기술한 『삼국지』와 『후한서』는 CE 3세기의 한반도 남부를 기술한 것으로 변한다. 辰韓과 弁韓이 시공을 초월하여 한반도 남부에 등장한다. 칠지도 명문으로, 열도가, 백제가 파견한 왜왕이 다스리는 지역이라 입증되었어도 억지만 쓴다. 우전팔번화상경이 칠지도를 보완해도 계속 우긴다. 왜5왕 중 무가 무령왕임이 입증되어도 모른 척 한다. 광개토대왕릉비문에 백제와 왜의 우열관계가 명시되어도 묵언수행을 한다. 파사석탑은 석공들이 날조했을 것이다. 거북이 방울은 거북이가 날조했을 것이다. 야마토임나설을 극복했다고 자부하는 김태식은 “성립 초기의 안라왜신관은 백제·왜 사이의 교역 대행기관의 성격을 가지며, 백제는 이를 통해 안라국(함안)·탁순국(창원)을 거쳐 왜국으로 향하는 교역로를 확보하려고 한 듯하다.”라고 주장한다. 동남아까지 활보하며 황해를 앞마당 삼아 무역선을 달리던 백제 선조들에게 김태식은 개그콘서트라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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