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 464년 2월 이야기는 신라마을이 고구려마을의 지배 하에 있었는데, 신라마을이 신라마을에 있던 고구려인들을 죽이자 고구려마을이 침략하였고, 신라마을이 임나의 일본부에 구원을 청하자, 일본이 고구려마을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천황이 즉위하고 이 해에 이르기까지 신라국(新羅國)이 속이고 배반하며 포저(苞?)를 바치지 않은 지가 지금에 이르러 8년째였다. 그러나 중국(中國)의 의도를 매우 두려워해서 고구려와 화의를 닦았다. 이로 인해 고구려 왕이 정예병사 1백 인을 보내어 신라를 지키게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고구려 군사 한 사람이 잠시 나라로 돌아갔는데, 이때 신라인을 전마(典馬)로 삼았다[典馬는 우마카히(于麻柯比)라고 읽는다.]. 그가 돌아보며 “너희 나라는 우리나라에 의해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어떤 책에서는 “너희 나라가 마침내 우리의 땅이 될날이 멀지 않았다.”라고 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전마는 이를 듣고 거짓으로 배가 아프다고 하고 물러나서 뒤에 있었다. 그리고 자기 나라로 달아나 들은 바를 말하였다. 이에 신라왕이 고구려가 거짓으로 지켜주는 줄 알고, 사신을 보내 급히 나라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집안에서 기르는 수탉을 죽여라.”라고 명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곧 그 뜻을 알고 나라 안에 있는 고구려인을 모두 죽였는데, 다만 고구려인 한 사람이 틈을 타서 벗어나 도망쳐 자기 나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고구려왕은 곧 군사를 일으켜 축족류성(筑足流城)에 모여서[어떤 책에서는 도구사기성(都久斯岐城)이라고 하였다.] 드디어 노래와 춤으로 즐거움을 돋우었다.
이에 신라왕이 밤에 고구려군이 사방에서 춤추고 노래한다는 것을 듣고 적이 모두 신라 땅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고, 이에 임나왕(任那王)에게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왕이 우리나라를 정벌하려 합니다. 이렇게 되니 흔들리는 깃발과 같이 불안합니다. 나라의 위태로움이 달걀을 쌓은 것보다 더하고 목숨의 길고 짧음을 심히 헤아릴 수 없는 바입니다. 엎드려 일본부(日本府)의 행군원수(行軍元帥) 등의 구원을 청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이로 인해 임나왕이 선신반구(膳臣斑鳩;카시하데노오미이카루가)[斑鳩는 이카루가(伊柯屢俄)라고 읽는다.], 길비신소리(吉備臣小梨;키비노오미워나시), 난파길사적목자(難波吉士赤目子;나니하노키시아카메코)에게 신라를 구원하도록 권하였다. 선신(膳臣;카시하데노오미) 등은 군영을 설치하고 머무르는 데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고구려의 여러 장수들은 선신 등과 싸우기도 전에 모두 두려워하였다. 선신 등은 직접 힘써 군대를 위로하고 나서 군사들에게 빨리 공격할 준비를 시켜 급히 진격하였다. 그리고 고구려와 대치한 지 10여 일이 지나자, 밤에 험한 곳을 파서 땅굴을 만들어 군대의 무기와 식량을 모두 운반하고 매복병을 배치하였다. 새벽에 고구려는 선신 등이 달아났다고 생각하여 병력을 모두 이끌고 추격해왔다. 그러자 매복병을 풀고, 보병과 기병이 협공하여 크게 깨뜨렸다. 두 나라의 원한은 이로부터 생겼다[두 나라는 고구려와 신라를 말한다.]. 선신 등이 신라에게 “너희는 지극히 약한데도 지극히 강한 나라와 대적하였다. 관군(官軍)이 구하지 않았으면 반드시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이번 싸움에서 하마터면 나라를 빼앗길 뻔하였다. 지금부터는 어찌 천조(天朝)를 배반하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 이야기는 광개토대왕의 열도 정벌로 5세기 초 열도가 남북국시대로 되었다가, 다시 백제가 반격하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위 이야기는 고구려계의 지배 하에 있던 신라마을을 백제가 점령하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강단유사사학은 이 이야기도 한반도의 신라와 고구려에 관한 이야기로 보면서, 황당무계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이 이야기의 行軍元帥는 外征에 나선 장군에게 주는 호칭이며 5세기에는 왜가 신라를 빈번하게 침략하였으므로, 신라를 공격하기 위해서 온 왜의 장수를 뜻한다고 주장한다.행군원수가 신라를 공격한 왜의 장수라면 뒤에 임나일본부가 신라를 구원하는 내용과 전혀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그러자 그들은 임나일본부가 신라를 구원하는 내용은 사실 여부가 의심된다고 주장한다.그들 소설을 전제하고, 그들이 사료라고 주장하는 「일본서기」를 그들의 소설에 따라 난도질하는 것이 그들이 자랑하는 실증적 역사 연구이다.
전술하였듯이 431년 이후 5세기에 신라를 침략하는 왜는 열도에서 백제에 밀려남에 따라 생존을 위해 신라로 해적질을 하러 간 고구려계 열도 소국들이다. 강단유사사학은 열도의 우리 역사를 부인하므로 「일본서기」 464년의 이야기를 설명하지 못한다. 신라마을을 구하는 즉 신라마을을 영향권 내로 흡수하는 일본은 열도백제 즉 백제관료 왜왕이며, 신라를 침략하는 왜는 열도백제에 밀려난 고구려계 마을국가들이다. 강단유사사학은 구원군을 침략군이라 날조하여서라도 일제의 소설에 충성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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