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8년 7월 4일(음력 1388년 5월 22일)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단행하였습니다.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 통보에 분노한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을 결정하자
친명파 신진사대부의 지지를 받던 이성계는 4불가론을 제시하면 이를 반대합니다.
-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할 수 없습니다.
- 왜구의 침략이 걱정됩니다.
- 장마철에 전염병과 활의 아교가 느슨해져 활쏘기가 어렵습니다.
이성계는 압록강까지 진출하였으나 마침 장마를 만나면서 위화도에서 회군을 결정하니
위화도회군은 고려가 추진한 북진정책이 좌절되고 조선이 건국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철령위 : 고려의 철령 이북 땅을 자국의 영토라 주장하며 명나라가 설치한 관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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